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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기다. 인류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신석기시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만 년 동안 진행되었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석기시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99.8%라고 한다. 인간이 처음 등장하여 사용하던 도구는 주로 나무와 돌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나무는 잘 썩는 특징 때문에 현재는 석기만 남아 있다.

 

구석기시대의 기후는 수백만년동안 추웠다 따뜻해졌다를 반복하던 시기였다. 현재의 따뜻한 기후도 간빙기의 하나로 보고 있고, 구석기시대 당시 서해는 바다가 아닌 호수였고, 한국과 중국, 일본은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을 주로 하였는데,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구석기시대 사람하면 우리보다 지능이 낮고 원시적인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초기 인류는 뇌 용량이 적었고, 도구도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진화를 거듭하면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부터는 현재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시 주로 사용하였던 석기는 시기마다 차이가 있다. 초반에는 큰 석재를 다듬어 사용하였는데 그 유명한 주먹도끼(아슐리안형석기)가 있다. 이후 지능이 발달하고 환경이 변하면서 도구도 변화기 시작했다. 구석기시대 후반으로 가면 작고 가는 좀돌날이 등장한다.

 

좀돌날의 등장은 인간의 도구가공 능력이 향상된 것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환경변화 때문이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추위에 강한 덩치 큰 동물들은 멸종하거나 북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반면 수풀에 몸을 숨기기 쉬운 작고 날쌘 동물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을 사냥하기 위해 석기도 좀 더 작고 날카롭게 가공되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한 분명한 자료는 별로 없다. 예전에는 구석기인들의 인골이 동굴에서 다른 동물뼈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사냥을 주로 하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굴에서 발견되는 인골은 사냥의 흔적이 아닌 동물에게 사냥을 당했던 흔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분명한것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물들을 일방적으로 사냥한 것이 아닌, 먹고 먹히는 관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기후의 변화로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동물과 먹거리를 찾아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해외의 구석기시대 유적 중에는 집터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신석기시대

구석기시대가 지나고 신석기시대가 되면 기후가 훨씬 따뜻해 진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토기가 등장하고 석기 가공 역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다. 그래서 간석기가 등장하며 초보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시기기도 하다. 또 신석기시대 사람드른 집을 짓고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유적은 제주 고산리에 있다. 토기를 만들 때 식물을 섞어 견고하게 만들었다. 또 작은 화살촉과 돌도끼 등을 만들어 사냥과 농경에 사용했다. 신석기시대의 간석기는 돌의 전체를 마연하기보다 일부분(특히 날 부분)을 갈아 만든 게 일반적이다.

 

신석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토기다. 토기가 발명 된 이유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숲에 불이나 흙이 구워진 것을 보고 만들었다거나,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바구니에 흙을 덧붙여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토기의 발명으로 인간은 음식을 조리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집을 짓고 무리를 지어 살았다. 제주 고산리 유적은 물론 서해안 일대에 수십채의 집터가 발굴되었는데, 선호하던 곳이 바닷가 근처였던 것 같다. 바닷가는 생선과 조개 등의 해산물을 얻을 수 있어 먹거리를 조달하기 유리했다.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는 신석기시대 경작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실제 신석기시대 유적인지는 논란이 분분하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먹거리는 다양했다. 도토리와 잣 등을 채집해 갈판으로 갈아서 조리해 먹었다. 특히 도토리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주식이었는데, 쓴 맛을 내는 탄닌이라는 성분을 없애기 위해 물에 담가 두었다가 먹었다고 한다. 또 토기를 이용해 불로 음식을 조리했는데, 발굴되는 토기에 그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다.

 

 

더불어 해안가에 남아있는 패총은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이다. 패총은 거주 목적이 아닌, 제철 생선이나 조개 등의 해산물을 얻으려 단기간 머문 장소다. 그래서 패총에는 불을 피웠던 흔적(야외노지)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패총은 신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청동기 그리고 역사시대 유물자료도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점유되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차이

그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명칭을 보면 구석기시대는 옛 구(舊)자를 쓰고, 신석기시대는 새로울 신(新) 자를 쓴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명칭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구자와 신자를 썼고, 그 차이는 석기를 가공하는 방법이 다르다.

 

구석기시대의 석기는 뗀석기라고 부른다. 돌과 돌을 부딛혀 떼어내거나, 모룻돌을 이용해 가공하기도 한다. 또 석기의 크기가 신석기시대보다 크다. 반면 신석기시대는 석기의 크기가 작고, 갈아서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구석기시대 말기에 이미 부분 마연 석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신석기시대에도 뗀석기가 여전히 사용되었다. 

 

생활방식의 차이도 있는데 바로 '집'의 등장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동굴이나 초보적인 수준의 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반면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이동과 정착생활을 혼용하여 집을 만들어 살았다. 

 

신석기시대의 집은 땅을 파고 나무로 기둥을 세워 만들었다. 또 집 내부에서 불을 피웠던 흔적도 남아 있다. 집 내부에는 토기를 비롯해 석기가 출토되는 경우가 많으며, 단독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여러 집이 무리를 지어 한 공간에서 살았다. 

 

토기의 유무역시 생활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신석기시대에 등장한 토기는 음식을 저장하고 조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단이 되었다. 반면 구석기시대는 저장과 조리가 그리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 모든 내용을 종합하면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가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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