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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집'이라는 구조물을 만들고 살기 시작했다. 집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규모에 따라 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신석기시대 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그리고 왜 신석기시대부터 집이 생겼을까?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토기의 사용, 농경의 시작, 마연 석기 등을 들 수 있다. 한랭했던 기후가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따뜻해지고 추운 기후에 살던 동물들은 멸종하거나 북쪽으로 이동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작고 날쌘 동물들의 개체수가 늘었고, 사람들은 이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도구를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다. 

 

크고 뭉툭한 구석기시대의 석기로는 날쌘 동물들을 사냥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고 가늘며 날카로운 화살촉과 같은 무기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화살촉을 만들려면 돌을 깨뜨린 후 날카롭게 마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구석기=타제석기, 신석기=마제석기(간석기)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또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열매 식물들이 늘고, 조, 기장 등의 곡물도 야생에게 자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열매와 곡물을 수확하고 저장하기 위해서 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토기는 비단 저장뿐만 아니라 불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게 되어 식문화도 큰 변혁을 맞게 되었다. 

 

이렇듯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를 이용한 저장, 조리를 시작하고 돌을 갈아서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어냈다. 또 집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바로 신석기시대 집이 발굴된 곳이다. 신석기시대의 집은 형태, 내부시설,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먼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동그란 모양,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내부시설로는 기둥자리, 불땐자리, 저장공간 등이 남아 있다. 기둥자리는 나무를 세워 골격을 만든 기초 부분이다. 불 땐 자리는 어려운 말로 노지(爐趾)라고 부르는데 대체로 집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불땐 자리는 흙이 불에 구워져 단단하다. 또 위석식 노지라고 해서 돌을 둘러서 불을 땐 흔적도 남아 있다. 불의 사용은 밤에는 조명 역할, 음식의 조리, 난방 등의 기능을 했다. 저장공간은 토기를 땅에 박아두고 음식물을 저장해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신석기시대의 집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먼저 가족이라는 개념을 엿볼 수 있다. 한 주거공간에 산다는 것은 구성원이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라 추정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엄마, 아빠 자식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규모에 따라 거주할 수 있는 인원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당시의 가족 규모를 판별할 수 있다. 더불어 이렇게 모인 집들이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면서 당시 마을의 규모도 가늠할 수 있다. 발굴성과를 보면 대체로 내륙에 위치한 유적들은 10채 내외의 집이 모여있는데 반해, 해안가에 위치한 유적은 수십 기가 모여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내륙보다 바닷가에서 음식을 조달하기 더 편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당시의 농경은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야생식물을 채집하거나 단순한 농경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 문암리에서 신석기시대 밭 유구가 보고되었지만, 정말로 신석기시대의 밭인지는 논란이 분분하다. 현재 본격적인 농경은 청동기시대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신석기시대하면 패총이 기억난다. 패총은 조개를 먹고 그 껍데기를 버려 쌓아 진 장소로 당연히 해안가에서 발견된다. 패총에서는 토기를 비롯한 각종 어구 때로는 뼈도 발견된다. 알칼리성을 띠고 있는 패총은 사람 뼈는 물론 동물뼈가 부식되는 걸 방지해준다. 

 

패총은 장기간 머무르며 살았던 곳이 아니라, 단기간 점유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를들어 조개가 잘 잡히는 계절에 방문하여 야영지를 만들고 일정기간 동안 조개를 비롯한 해산물을 확보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래서 패총에 위치한 유적은 집터보다 단순한 야영캠프, 노지 등이 주로 남아 있다. 

 

정리하면 신석기시대의 집은 가족이라는 개념이 구석기시대보다 뚜렷해 졌다는걸 보여준다. 집 안에서는 가족들이 살았고, 불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음식을 조리해 먹었다. 또 짧은 기간 해안가로 이동해 조개를 비롯한 해산물을 확보해 먹거리로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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